세상에서 돈 주고 살 수 없고 저축할 수도 없으며 붙잡아 매 둘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간입니다. 만약 시간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시간을 사서 쌓으려고 할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없는 이들은 이생이 전부이기에 필사적으로 시간을 사려고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게 시간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시간이란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chemical element)가 똑같은 탄소입니다. 그런데 같은 원소를 가진 것이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고 보잘 것 없는 숯 덩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올 해도 똑같이 하루 24시간이라는 원소를 부여받습니다. 그 시간이 다이아몬드가 되느냐 숯이 되느냐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를 보시고 그 삶을 빛나게도 어둡게도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실의에 빠진 제자들 중에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를 잡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벽이 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가셨는데, 그들을 책망하려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실망해 있는 제자들을 격려하며 일으켜 세우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21:6). 그 순간 요한의 눈이 열려서 <주님이시다!>라고 외치자, 베드로가 배에서 뛰어내려 주님께 나갔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배를 몰고 급히 육지로 올라왔는데, 그때 그들이 본 장면이 이렇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요21:9).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들을 보고 하신 말씀은 “생선과 떡이 있으니 와서 조반을 들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놀라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생선을 다 구워놓고 준비해 두셨는데 왜 새로 잡은 생선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면서 말씀에 순종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시키려 한 것으로, 이는 앞으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역이 주의 말씀을 붙잡고 해야 할 사역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남은 삶을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떠난 후에 그들이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박해라는 환경에 처하더라도 두려워말고 당신의 말씀을 붙잡고 이겨내기를 원하신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빛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런즉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6). 바울은 돈을 아끼라고 말하지 않고,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낀 세월을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중단 없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숯 같은 인생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게 하는 지혜임을 알았고, 스스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 한 시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고, 모든 시간을 주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함으로 그 인생을 빛나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