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자신 있으십니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그 여러 감정 중 가장 기분 나쁜 감정이 두려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삶 자체가 두려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사람이 살면서 티내고 싶지 않은 감정이요 기분 나쁜 경험이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자신감을 잃게 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참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두려움을 없애려고 의학적 과학적 심리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아내어 적용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신앙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두려움”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성경구절은 창세기 3장 10절인데, 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합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여기서 우리는 아담이 두려워한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시작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면 두려움의 어둔 감정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 예로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시27:2)라는 표현에서 보듯, 시편 27편을 쓸 무렵 다윗은 대적들이 사방에서 위협하는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두려운 상황에서, 예상과 달리 본 시편 전반에 걸쳐서 평안을 노래합니다. 다윗은 그 이유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여기서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에 관한 정의는 삶의 경험에서 나온 믿음의 선언으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27:3)라는 위대한 고백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태연하다>는 말은, 영어로 표현하면 Confident라고 하겠는데, 자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때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어떤 상황이든 컨트롤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평안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인간관계, 건강, 비즈니스, 은행 벨런스 등이 컨트롤 되면 안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누구나 두려워할 수 있는 상황에서 태연하다고 선언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빛으로 구원으로 생명의 능력으로 믿어 두려움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주 안에 있을 때 경험되는 건강한 자신감이 우리 인생을 바로 세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정한 발견을 향한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이 열리면 우리는 환경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두려운 감정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열린 시각으로 보면 한 순간에 극복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악인이 살을 먹으려할 때, 군대가 진을 치고 대적할 때 주변 강대국에 원군을 요청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려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새로운 시각으로 오직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