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시간(욤)이 흐르기 시작하였고 역사도 시작되었습니다. 6일간의 창조기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입니다. 이는 ‘하루’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간을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하루라는 시간이 오늘 우리가 사는 시간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만물의 시작과 끝이 있듯 우리 인생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시간에 대한 이런 이해를 가지고 모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이렇게 인생의 연한을 하나님이 주관한다고 믿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여기서 베드로는 마지막이 가까웠다 하면서 기도를 강조하는데, 지혜로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천국 소망입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마음’으로 무장한 후,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여기서 베드로는 ‘사랑하라’는 명령에 앞서서 ‘무엇보다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초대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공통점이 있었지만, 교회 밖에서의 인간적인 관계는 그야말로 다양했는데,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예로, 오네시모와 빌레몬 같은 이를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이들이 함께 주의 일을 하려면 주의 사랑 안에서 녹아져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이 그 ‘사랑’을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9,10).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서로’라는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신앙 공동체의 일원들이 서로 섬김으로 다양한 신분의 성도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보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더 견고해지는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여행 중, 사마리아 수가 성에 만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께서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 것은 단지 물 한 잔을 대접받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복음이라는 ‘생수’를 대접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얼굴조차 내 보이지 못했던 여인에게 다가가 “물을 좀 달라!”고 함으로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열려고 다가섰던 것입니다.
살면서 암기하듯 배운 지식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스며든 지식은 영원히 가기도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데, 사마리아 성 여인은 그 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전을 섬기며 지상 명령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은 성도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성은 ‘갈등’이 아닌 ‘조화’로 승화되고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고,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서로 섬기며 사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