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상처다루기>

지난 7월 4일, 시카고 하이랜드파크 시에서 독립기념 퍼레이드가 막 시작 될 무렵, 비극적인 총격사건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최근 들어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이런 총기사건의 범인들은 일반적으로 내향적인 경우가 많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곪을 대로 곪도록 방치하다가 결국 이런 엄청난 일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처는 잘 다루지 못하면 곪아서 악취는 내지만, 잘 다루면 익어서 향기를 내기도 합니다. 가인과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먼저, 가인을 보십시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4:8). 가인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고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자 큰 상처를 받아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창4:4-5에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4:4,5). 이걸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것은 먼저 아벨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졌기 때문이요,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가인이 먼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자기가 드린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한 것만 들여다보며 상처를 받아 이런 악을 백주대낮에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반면, 가나안 여인은 주님께 받은 상처를 잘 다룸으로 향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에 이르렀을 때, 귀신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니 고쳐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15:26). 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할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인이 받았을 상처를 상상해 보십시오. 귀신들려 고통을 받고 있는 딸을 보는 것만도 괴로운데,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하시며 개 취급하시니 그녀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그 상처가 곪아 터지도록 방치하며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예수님께 나온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귀신들린 딸이 나음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은 크게 게의치 않고 오직 딸을 생각하며 주님께 더욱 절박하게 간구했던 것입니다.
한 보험회사에서 각 병원 외래환자 5만2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의외였습니다. 의료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환자가 재 입원율에서 12% 높았고, 의료 총비용에서 8.8% 높았으며, 환자의 최종 사망률은 26%나 높았는데,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사망률은 반비례한 것입니다. 병이 들면 어떤 의사에게 여러분의 몸을 맡기겠습니까? 친절한 의사인가? 실력있는 의사인가요? 누가 좋은 의사인가요? 환자의 병을 잘 진단하고 그에 따라 최적의 치료를 하는 의사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온 목적이 분명했고, 예수만이 그 목적을 이루어주실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모진 말을 듣고도 견디며 예수님께 이렇게 요구한 것입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15:27). 이 대답은 예수님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그 증거를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고백을 듣고 하신 이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가나안 여인은 상처를 잘 다룸으로 딸의 치유뿐 아니라, 이런 ‘믿음의 훈장’까지 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