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8-20-24), 오랜 동안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자로 이름을 올렸던 스페인의 마리아 모레라가 117세로 소천했습니다. 그녀는 ‘슈퍼 카탈루냐 할머니’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온 것으로도 유명한데, 사망 전 날에 이 계정에 자신의 임종을 암시하는 이런 글을 올리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울지 마라. 나는 눈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는 곳에서 나는 행복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남긴 이 글이 마리아의 유족이나 그녀를 사랑하는 남는 자에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었고, 그 믿음을 남는 자들에게 영원한 소망의 씨앗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할 그 순간이 오자,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17:1). 이것은 세상적 관점에 볼 때는 대수롭지 않는 일처럼 보일 수 있으나 주님께는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여기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로, 궁극적으로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죽음을 당신이 영화롭게 되는 순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음을 영광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성취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것인데, 주님은 당신이 맡은 사명을 어떻게 성취하였습니까? 한 예로 주님은 무고하게 고발을 당해 사형에 처해질 순간에도 “내가 그로라”하시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다른 이도 아닌 로마 백부장이 “그는 하나님의 아들”(마27:54)이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사명에 따라 죽는 것은 세상에서 ‘영광의 절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패션지 Allure의 편집장이 노화 방지(anti-aging)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젊음을 떠받든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젊음의 싱그러움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 우리가 늙어가며 추하게 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선언은 세상의 가치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미를 전파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시간이 흐르면 그에 상응하게 변해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젊게 보이는 사람은 있지만, 젊어지는 사람은 없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삽니까? 세상 영광과 가치만 따라 살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사는 이들은 결코 죽음을 ‘영광의 절정’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성취한 사람만이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내다보고 그 순간이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들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 주께서 그러했듯이 남는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예수님이 여기 제자들을 위해 올린 기도의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보전’입니다. 원어로는 ‘테레오’(τηρέω)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굳게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악과 오염으로부터 제자들을 굳게 붙잡아 달라고 한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전하되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존”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이름’은 본질을 의미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이름의 본질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으로 제자들을 보호해 달라는 뜻일 될 것입니다. 이는 그것만이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의 영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