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내 영혼의 가치>

지난 고국방문에서 고국의 국민 의료체계가 아마도 세계 최고일 거라는 사실을 직 접 체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국 방문 3주 전에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기침이 멈추지 않아서 고국에 도착한 다음 날 오전 동네 의원을 방 문했을 때입니다. 접수를 하고 곧 의사와의 만남이 이어졌고 엑스레이 촬영, 주사 그리고 약 처방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의료비는 단돈 3만 5천원이었습니다. 그 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날 저녁,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던 기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사라진 것입니다. “야, 그 의사 참 용하네!”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현재 고국에서는 의사가 이런 말을 듣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래서 동네 의사들은 “빨리” 효과를 볼 수 있게 “강한 처방”을 하게 되 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순위에 따라 줄을 세우는 세상 경주와 달리, 영적 경주는 상대평가가 아니 라 절대평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을 믿기만 하면 누구라도 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것은 이를 믿는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한 예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달린 강도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 소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 니라”(눅23:43). 세상적으로 무가치한 자로 낙인 찍혀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 의 삶이 한 순간에 바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판단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객관적 증거 외 에 그들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인 고려나 개인의 성향에 기초하는 것이어서 완전하 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평가는 정확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 든 우리는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 라고 해도 주께서 무가치하다 보시면 그런 것입니다. 반면 주께서 함께 낙원에 거 하게 될 강도처럼, 세상이 아무리 무가치하게 보아도 주께서 귀하다 하시면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원래 질그릇 정도의 가치 밖에 되지 않는 가 치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투박하고 잘 깨지는 특성이 있는 그릇입니 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질그릇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세상 유혹 앞에 쉽게 넘어가고 분노의 불길에 쉽게 타버리고 시기와 질투에 몸을 떨지 않습니까? 우리 는 믿는다고 하나 이렇게 죄를 지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자주 깨집 니다. 우리가 자신을 질그릇 같은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곧 이런 허물을 인정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울이 질그릇 이미지를 통해 강조하는 바는 그런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적으로 연약하지만 우리 안의 그리스 도로 인해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하 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하게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가 귀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세월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우리 육신은 힘을 잃고 늙어가며 기억 력도 감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바울은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갈수록 가 치가 떨어지지만, ‘영혼의 값’은 높아질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 리 안에 사는 한, 예수님 자신이 바로 나의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